느티나무
느티나무는 가지 3개가 새로 생겨 뻗어가는 방식이 규칙적이다. 이런 3분법이 적용되다보니 큰 나무가 되어서도 안정된 모습을 이룬다. 잎의 크기는 작아서 투과되어 오는 빛을 차단하면서도 그늘이 어둡지 않다. 이러한 모습 때문인지 시골 어느 동내 입구이든 느티나무가 서 있고, 동네의 수호신 겸 여름철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다.
내 고향동네에도 수령 800여 년의 느티나무가 면사무소 한 켠에 서 있다. 이맘때쯤에는 동네 아이들은 나무 주위를 장난치며 돌아다니고, 할아버지들은 장기를 두기도 하고 담론을 나누기도 한다.
어린 나이였음에도 나는 할아버지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는가 보다. 한 할아버지가 “자네는 살려고 먹는가? 먹으려고 사는가?”하는 화두를 꺼내었다. 대다수의 할아버지들이 ”살려고 먹지“라고 답을 하는데, 한 할아버지가 ”나는 먹으려고 사네“하는 것이다. 성격까다롭기로 소문난 영감님이었다. 옛날 어렵던 시절 시아버지 입맛 맞지않다고 대꼬라비를 두드리며 “에헴 에헴“하면서 식사하지 않으면 며느리가 할 수 있는 해결책이 무엇이 있겠는가? 무우 한가지로 만들 수 있는 반찬이 내가 알기로 열 가지는 넘을 것 같다. 할아버지의 에헴이 한식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된다.
그다음 담론으로 ”자네들 장차 우리나라에서 어디가 발전할 것으로 생각하는가?“였다. 내가 생각하기로 그 당시 할아버지들이 출입이 많다든지, 멀리 여행을 한다든지 할 입장은 아닌데도 전국을 두고 이야기를 한다. 문제낸 할아버지가 ”우리나라 철도에서 열십자로 교차하는 곳이 영주와 대전 두 곳인데, 영주는 강원도 석탄광산이 주이고, 대전은 호남과 서울, 부산, 충청 모두를 이으니 대전이 발전할 것일세“하는 것이다. 지금 대전이 발전한 모습과 세종시를 겸하여 생각해 보면 참 선견지명이 있는 할아버지들이었다.
용문면 북쪽 경계를 지나면 경천댐이 있고, 마을 이름이 수평이라는 곳이 있다. 나는 초등 때 몇 번 그 길을 갔던 적이 있다. 댐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물은 풍부하였으나, 동로면에서 내려오는 계곡 급류로 수평이라고는 할 수 없는 곳이었다. 댐이 이루어지기 수백 년 전에 이미 그 마을 이름이 수평이었고, 댐이 이루어지니 마을 이름대로 이루어졌다. 옛 어른들의 선견지명을 산책 중 강변의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거의 70년 전의 기억을 되새겨 본다.
2024. 7, 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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